지금 여기, 전태일


Extra Form
이름 최아름
직업 케이블방송CS매니저

최아름.jpg

 

최아름입니다.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딜라이브금곡지회 조합원이에요. 우리 노조는 따로 가입된 가맹조직은 없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직접 가입됐습니다.

노조 이름처럼 저는 딜라이브 금곡점에서 CS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비즈팀이라고 하는데요, 아파트나 호텔, 헬스장, 요양원, 병원 등 단체계약을 관리해요. 요금이나 민원 등 전산처리 업무를 맡고 있죠. 지역적으로는 경기도 남양주, 여주, 양평, 광주, 구리, 하남까지 관리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업무량이 증가하는 때가 있어요. 요금청구서가 나오는 기간인데요, 그럴 때는 일이 많아요. 정해진 시간 내 처리할 수 없으니까 시간 외 근무도 하죠. 그 외에는 저희도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합니다.

직업 특성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에요. 특히 민원이 발생했을 때죠. 가입자와 통화를 하다 보면 욕을 하거나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분들도 있거든요. 회사 응대 체계에 따르지만, 사실 별다른 응대 방법은 없어요. 가입자 불만이 풀릴 때까지 전화를 먼저 끊지 않으려고 하죠. 갑자기 끊어지면 불만신고가 접수되거든요.

불만이 접수되면 책임전달로 연결돼요. 나중에 인사평가 등 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죠. 최대한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고 하는데, 제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 그런 부분에서 지칠 때도 잦죠. 저희도 감정노동을 하니까요.

저는 2010년에 CNM 하청업체에 입사했어요. CNM은 지역별로 지사를 두고 그 아래 하청업체를 뒀는데요, 그 업체 중 한 곳에 들어간 거죠. 올해로 벌써 10년 차예요.

입사 후 첫 한 달을 일하고 월급을 받잖아요? 그런데 당직비가 잘못 계산돼 지급됐더라고요. 당시 총무과장에게 가서 말했어요. 당직비가 잘못 나온 것 아니냐, 그랬더니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흐르더라고요. 다른 직원이 제게 “여기는 무조건 하루에 얼마로 계산해서 지급해. 그리고 이런 거 물어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해”라고 조용히 귀띔해주더라고요.

그러다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입사 3개월 만에요. 그때 CNM 하청업체 중심으로 비정규직노조가 생겼거든요.

본래는 희망연대 소속으로 딜라이브노동조합은 정규직지부만 있었어요. 정규직노조가 생기고 몇 년 뒤에 비정규직지부가 생긴 거죠. 저는 그때 가입했고요. 지금도 같이 일하시는 김진억 국장님이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가입할 수 있겠냐?”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때 꽤 많은 직원들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CNM 정규직지부만 있던 회사였다가, CNM이 운영하는 전국 지사별로 비정규직노조가 확산됐죠.

그리고 해고됐어요. 노조 가입한 지 6개월 만에요. 당시 하청업체 대표가 CNM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그 과정에서 직원들 재계약이 안 되고 모두 계약해지가 됐거든요. 그러다 새 업체가 CNM와 계약을 맺었고 기존 업체 직원들 면접을 봤어요. 문제는 그때 노조에 가입했던 직원들에게만 ‘채용에서 떨어졌다’라는 문자를 보냈어요. 그렇게 해고가 된 거죠. 당시 109명이 함께 해고됐어요.

109명이 전부 광화문에 모여서 투쟁을 시작했어요. 6~7개월 가량 한 것 같아요. 강성덕, 임정균 동지가 전광판 고공농성을 한 게 그때예요. 임단협을 할 시기이기도 해서 CNM 직원이 전부 파업을 했어요. 직장폐쇄 당해서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죠. 정규직지부 파업이 끝난 뒤에는 저희 109명만 광화문에 남아서 투쟁을 했어요.

그때 제가 동두천에 살았거든요. 매일 시청역까지 다녔어요.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인데, 마치 회사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 9시에 맞춰서 나갔죠. 조금이라도 늦으면 조합원들이 눈치를 줬거든요. (웃음) 6개월 동안 매일 광화문으로 출근했어요. 주말도 빠지지 않고요.

농성장에서 밥을 주면 먹고, 잠을 자야 하면 길에 누워서 자고 그랬죠. 겨울엔 너무 추워서 집에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갔던 기억도 나요. 그런 거 아세요? 엄청나게 추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얼굴이 새빨개지잖아요? 종일 밖에서 떨다가 집에 가려고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쟤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렇게 집에 오곤 했죠.

그때 사무차장을 맡고 있을 때였어요. 전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간부를 했으면 좋겠다고들 해서요. 그러니 뭔가 책임감이 생기잖아요? 주위 지인이며 가족들도 다 반대했거든요.

아빠가 회사 다니실 때 노조를 하셨는데, 경찰서에 한 번 끌려가신 적이 있대요. 오락부장을 맡으셨는데, 앞에서 춤을 추다가 끌려나갔대요. (웃음) 처음에는 노조 활동을 엄청 반대하셨어요. 해고된 상태라 아빠한테 돈을 빌리기도 했거든요.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금을 못 갚아서 대출업체가 우리 집에 찾아간 일도 있었어요. 동네에 소문이 다 났었대요. “딸내미가 노조를 하다가 빚쟁이가 됐다더라.” 그 작은 시골 동네에 말이죠.

 


  1. “대한항공이 좋아서, 노동조합을 하고 있어요”

  2. “우리를 지키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싸움으로”

  3. “조합원 모두 힘 있는 노동자… 신미지회의 목표예요”

  4. “교사도 ‘노동자’니까… 아이들의 노동자성을 키워주고 싶어요”

  5. “조금 더 목소리 내서, ‘나 봉제인이야’ 당당한 게 목표예요”

  6. “먼저 손 내밀면 좋겠어요, 노동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요”

  7. “아이들 미래 열어주고 찾아주는, 방과후수업 노동자입니다”

  8. “돌봄 영역의 모두가 소중한 노동자죠”

  9. “타투이스트가 한 명의 노동자로 인정받는 날이 오게 하고 싶어요”

  10. "우리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화장실이 낯설어서 실수하는 것 등을 눈높이에 맞춰 알려주면 어느새 다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모습을 봐요."

  11. "저도 기름에 데서 2주가량 산재를 쓴 적이 있어요. 그동안 기사님들이 산재를 쓴 적이 거의 없었대요."

  12. "가입자 불만이 풀릴 때까지 전화를 먼저 끊지 않으려고 하죠. 갑자기 끊어지면 불만신고가 접수되거든요."

  13. "객차를 점검하는 일부터 승차원 안내방송을 하고요, 어르신 등 승하차를 돕기도 해요."

  14. “마음건강을 돌보는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심리적외상에 노출될 때가 많아요.”

  15. “집을 청소하는 것과 다르게 학교는 통제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16. “처음에는 스타렌트카 소속이 아니고 용역업체 소속이었어요”

  17. “잡월드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잖아요? 그런데 가장 탄압이 심한 곳도 여기죠”

  18. “현장에서 여성이라고 무시를 하니까 억울하죠”

  19.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정확히 돼야 해요"

  20. “똑같은 재난에도 공무직은 위험수당이 없어요”

Board Pagination 1 2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