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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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양문정·조미정·조은혜
직업 조리보조원 노동자

조리보조원.jpg

 

우리는 서울대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조리보조원이에요.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소속입니다. 저는 양문정(가운데)이고요, 두 친구는 조미정(왼쪽), 조은혜(오른쪽)입니다. 저는 중국에서 왔고 두 사람은 캄보디아 출신이에요. 둘 다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이름을 바꾼 거예요. 캄보디아 이름은 너무 어렵고 길거든요. 또 한국 이름으로 바꾸면 사람들이 부르기도 쉽고요. 저는 귀화하면서 중국에서 쓰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한국말로 양문정입니다.

저는 한국에 온 지 5년이 조금 넘었어요. 올 9월이면 6년이 됩니다. 서울대 생협이 첫 직장이에요. 미정 씨는 여기 오기 전 독산동에 있는 미싱공장에서 일을 했대요. 식당은 이제 1년 정도 됐고요. 은혜 씨도 낙성대 쪽 미싱공장에서 일을 했고, 식당에 온 지는 5년 정도예요.

식당에서 하는 일은 주방 보조예요. 조리사가 음식을 만들 때 옆에서 돕는 거죠. 때로는 음식을 만들 때도 있고요. 학생들 식사시간이 되면 배식도 해요. 배식 끝나고 설거지를 하는 것까지가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식당은 아침식사부터 준비를 해요. 그래서 우리는 시차출근을 하고 있어요. 어떨 때는 아침 6시30분에 출근하고 또 어떨 때는 8시, 다른 때는 9시에 출근하기도 해요. 학생들 점심식사, 저녁식사까지 준비하니까 하루에 8시간 정도 일을 하죠.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여기서 식사하는 학생들이 줄었어요. 평소에는 매우 바쁘거든요. 시간 외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학생들 점심식사 전에 우리도 점심을 먹어요. 10시쯤 먹는데, 식사시간은 30분 정도? 바쁠 때는 급하게 먹기도 하고요. 설거지까지 끝나면 30분 정도 쉬어요. 쉬는 공간이 별도로 있거든요. 이것은 작년 10월에 파업을 해서 얻어낸 거예요.

처음에는 생협 노동조합이 있는 줄 몰랐어요. 여기서 일 시작하고 선배님들이 알려줘서 알았죠. 같이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에요. 노동조합을 같이하자고 했어요.

노동조합이 있으니 확실히 도움이 많이 돼요. 우리가 건의할 것이 있으면 대신 나서기도 하고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노조예요. 한국으로 귀화하고 한국말도 할 줄 알지만 사실 정확한 것까지 하긴 어렵거든요. 학교 측에 무슨 일이 있으면 노조를 통해서 우리도 알 수 있어요. 또 일하다가 다치면 학교는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지만, 노조에 대신 이야기를 하면 해결이 돼요. 은혜 씨는 무엇보다 노조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고 해요.

우리는 여기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돈을 벌러 왔는데 우리 노동에 비해 임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속상하거든요. 그럴 때 노조에서 나서서 우리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요. 작년에도 우리 임금 인상 문제와 여러 가지 노동 환경 개선 문제 때문에 집회를 했었어요. 학교 본부 앞에서 한 10일 정도 했죠. 파업을 하고 집회도 하고 피켓팅도 하고 출퇴근 선전전도 했어요. 현수막을 들고 정문에 서서 직영화를 요구하기도 했어요.

우리가 일하는 곳이 학교잖아요. 우리가 파업할 때 학생들이 우리 노동자들을 많이 이해해주고 응원해줬어요. 메시지도 많이 남겨줬죠. 우리 노동자들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열악한 환경에 있다고, 임금도 적으니까 학교 측에서 우리 이야기를 더 들어줘야 한다고 했어요. 기분이 좋았어요. 특히 학생들 응원을 받은 게 좋았어요.

평소에는 고되게 일을 하고 있으니까, 파업할 때는 조금 편하기도 했어요. 일하지 않으니까요. 파업을 할 때 각자 집에서 점심을 준비해왔거든요. 반찬이며 그런 것 준비해서 언니들하고 함께 나눠 먹었어요. 그러다가 또 소리를 외칠 때는 그렇게 하고 구호도 하고 그랬죠. 파업하고 함께 일하는 언니들하고 더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은혜 씨는 함께 일하니까 가족이랑 조금 비슷하다고 해요.

미정 씨와 은혜 씨는 캄보디아에 있을 때도 노동조합을 했대요. 캄보디아도 어떤 노동조합은 많이 도와주고 노동자 편에 서지만, 다른 노동조합은 자기들 이익만 생각하기도 한대요. 많이 도와주는 곳은 월급을 안 주는 공장에 따지면서 싸우고 파업도 같이하곤 했대요. 한국하고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우리 셋 다 결혼하면서 한국에 왔어요. 아이를 낳은 뒤 집안 살림 부담을 덜기 위해 일을 시작했거든요. 한국에서는 남성이 가정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니까, 급여가 적은 이런 일에는 여성노동자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세상이 바뀌어서 사람들이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지만, 실제 제가 느끼는 권익 상승은 아직 미미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전태일 열사 덕분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 희생 덕분에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발전되는 것 같아요. 아직은 전태일 열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그러나 그분은 노동자의 협심을 일으키는 물결이자 불씨라고 생각해요.

그분이 있어서 노동자의 인권이 주목받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노동자들이 또 여성 노동자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일하고 우리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 “우리 아들도 조합원이거든요. 10년 차 선배예요.”

  2. “예술도 노동력을 파는 일입니다”

  3. “사업자 번호도 없는 개인사업자. 제3의 계급 같았어요”

  4. “사측이 노노갈등을 조성하기도 했어요. 그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5. “쉬는 공간이 별도로 있어요. 작년 10월에 파업을 해서 얻어낸 거예요.”

  6. "이렇게 일을 시키면 안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업무들이 내려오다 보니 이런 것들로 인해 저희들은 내부에서 ‘작가’가 아닌 ‘잡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7. “고용보험법안은 2017년부터 계속 국회에 계류 중이에요. 실질적으로 적용이 안되고 있죠”

  8. “일 시킬 땐 철도의 얼굴, 월급 줄 땐 철도의 알바.”

  9. "“요양보호사 주제에” “아줌마가 뭔데?” 언어폭력도 자주 당했어요."

  10. “'여잔데 할 수 있을까?’가 아니구요, 무조건 덤벼서 하면 돼요”

  11. “외국인 가르친다고 교원(노동자)이 아닐 수는 없잖아요”

  12. “혼자 남아도 싸울 거예요. 민주노총 조합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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